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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육연원민
작성일 26-08-07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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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막한 언덕의 아늑함은 문명의 출발지가 되기에 충분했다. 완만한 구릉은 바람을 막아주고 발아래 펼쳐진 들판은 물을 대기 좋았다. 2800년 전 사람들은 이곳에 집을 짓고 처음 벼를 심었다. 충남 부여군 초촌면 송국리는 한반도 청동기 문화를 대표하는 ‘첫 마을’이다. K컬처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드높은 지금, 그 뿌리를 더듬어보기 위해 부여 답삿길에 나섰다.
언덕에 올라 마주한 것은, 그러나 회색 시멘트였다. 1974년 이곳이 발견됐을 당시 독자적 청동기 문명을 보여주는 비파형동검이 출토돼 한국 선사고고학계를 발칵 뒤집었던 곳이건만, 무덤 자리는 시멘트로 두껍게 덮였고 그 위에 페인트로 그려넣은 윤곽선이 이곳을 짐작하게 할 뿐이었다. 인근에서는 송국리식 주거지가 110여 기 발굴됐다. 국사 교과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송국리식 토기’가 이곳에서 출토됐다. 집자리 유적지는 덮어둔 시멘트가 깨지고 갈라진 틈이 여실히 드러나 더욱 초라했다. 청동도끼를 만들던 거푸집, 불탄 쌀 등이 발견돼 비옥한 자연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며 벼농사를 짓기 시작하고 독자적인 문명을 만들었던 3000년 전 풍경은 상상으로만 떠올려야 했다. 송국리식 주거지는 충청도와 전라도를 중심으로 분포하는 청동기시대 집터의 대표적 유형으로, 바닥 중앙에 구덩이를 파고 양쪽에 큰 기둥 자리를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송국리 유적에서는 25차례 이상 정식 발굴 조사가 이뤄졌다. 처음 발견된 돌널무덤을 비롯해 항아리에 시신을 모신 옹관묘, 구덩이를 파 매장하는 토광묘 등이 능선을 따라 줄줄이 발굴된 현장이다. 유물은 국립부여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인근의 부여송국리유적문화관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현장 안내판에서는 그런 설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국가유산위원인 이광표 서원대 교수는 “실물은 시멘트 아래에 있다는 등의 내용을 안내판에 표시했어야 한다”면서 “발굴이 앞으로도 더 진행될 예정이라면 시멘트가 아닌 강화유리 등 다른 방식으로 유구를 보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송국리 유적은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서 빠지지 않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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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4월 주민의 제보를 받고 현장에 나간 국립박물관 조사팀은 도굴됐으리라 짐작했던 돌널무덤에서 요령식 동검과 간돌검, 청동 끌, 곱은옥, 대롱옥, 화살촉 등 33。을 수습했다. 전형적인 요령식 동검이 청동기시대 무덤 안에서 출토된 것은 처음이었다. 이로써 “한반도에는 진정한 청동기 문화가 없었다”던 일본 고고학계의 식민 사관이 무너졌다. 유적은 발견 2년 뒤인 1976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산업화와 개발 광풍 속에서도 이 지역이 자연색 그대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지난해로 발굴 50주년을 맞았다.
성과는 눈부시다. 100기 이상의 집자리를 비롯해 나무 울타리와 망루 흔적, 무문토기 가마터, 요령 지역과 닮은 청동도끼 거푸집, 불탄 쌀이 발견됐다. 입이 오므라들었다 살짝 벌어지는 토기는 ‘송국리식 토기’라는 이름을 얻었다. 기원전 9세기부터 5세기까지 충청·전라와 영남 일대에 퍼진 농경 정착 사회는 ‘송국리 문화’로 정립됐다. 이 문화는 바다를 건넜다. 일본 사가현 요시노가리 유적은 1986년 공업단지 조성을 위한 사전 조사에서 12만 평이 넘는 야요이 시대 최대 환호취락으로 확인돼 일본은 물론 세계 학계를 놀라게 했다. 환호와 망루, 고상창고, 2000기가 넘는 옹관묘, 세형동검과 청동기 거푸집까지 출토 유물은 한결같이 한반도의 영향을 입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07년에 ‘요시노가리, 일본 속의 고대 한국’ 특별전을 열어 양국 유물 600여 .을 비교 전시하기도 했다.
일본은 요시노가리를 국가 사적으로 지정하고 역사공원으로 가꿨다. 문명을 전해준 본가는 시멘트 아래 잠들고, 문명을 전해받은 분가는 국책 공원이 된 셈이다. 송국리에서 멀지 않은 산직리의 고인돌도 다르지 않다. 청동기인들이 남긴 거석 유적이건만 수풀 사이 표지판 하나가 전부다. 기울어진 돌판 위에는 후대 사람이 채석을 위해 못질한 흔적도 보인다. 수천 년을 버틴 큰 돌이 외롭게 서 있다.
■‘돌 하나’로 시작한 전곡의 선례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기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적이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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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년 휴가 나온 미군 병사가 주워 든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말 그대로 ‘돌 하나’에서 시작한 유적이다. 이곳은 사적 지정 후 국가가 십수 년에 걸쳐 부지를 사들였고, 연천군립으로 출발한 전시관은 경기도립 전곡선사박물관으로 성장했다. 구석기 축제 등 주민 참여가 쌓이며 이제는 보존과 활용이 함께 가는 모범 사례로 꼽힌다.
전곡선사박물관장을 지낸 이한용 경기문화재단 전문위원은 송국리의 가능성을 더 높게 본다. “고고학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세트로 나와 있는 곳이 송국리다. 개발이 전제된 면피용 발굴이 아니라 순수한 학술 발굴로 일관해온 덕에 유적 조성 당시의 풍광이 그대로 남은, 그야말로 원석 같은 유적”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이 전 관장은 “지방소멸 시대에 인구 5만 이하 도시가 살길은 결국 문화 관광이다. 선사 유적은 보존에는 가장 취약하지만 활용 가능성은 가장 높다”며 “부여군에서 감당할 단계는 지났다고 본다. 일본의 요시노가리나 중국의 역사 프로젝트에 필적하는 국가 단위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사 유적은 진정한 K컬처의 뿌리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올해 5월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2019년 제정된 경주의 신라왕경특별법과 형평을 맞춘 법으로, 공주·부여·익산의 백제 유적을 2038년까지 총 1조 4028억 원을 들여 보존·정비하는 대형 국가 사업의 근거가 마련됐다. 부여에만 부소산성, 관북리 유적, 나성, 정림사지 등에 7093억 원이 배정될 예정이다. 백제 왕도가 경주처럼 세계적 역사문화 도시로 육성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정작 그 백제보다 2000년 앞서 이 땅에 마을을 세운 문명의 발상지 송국리는 특별법의 소외된 그늘에 놓여 있다. 부소산성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다. 그 예산의 100분의 1이라도 언덕 위의 첫 마을에 닿는다면, 백제라는 꽃 아래 청동기라는 뿌리가 비로소 튼튼해진다. ‘문화의 균형’이란 그런 것이다.
부여 송국리 유적의 청동기 문명이 일본으로 전파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 요시노가리 유적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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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공업단지 개발 과정에서 발견된 12만평 이상 규모의 대규모 마을 유적은 세계 학계를 놀라게 했고, 발견된 유물들은 모두 한반도의 영향을 보여줬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안타깝게도 국가유산청 조직도에 역사 이전을 관리하는 ‘선사’의 이름은 없다. 문화유산국 아래 역사유적정책관에는 역사유적정책과와 고도보존육성팀·역사문화권과·유적발굴과가 있고 심지어 신라왕경추진단까지 별도로 꾸려져 있다. 자연유산국은 명승과 천연기념물을, 무형유산국은 4개 과를 두고 무형유산을 챙긴다. 그러나 한반도 문명이 시작된 구석기·신석기·청동기, 수십만 년의 시간을 전담하는 조직은 어디에도 없다. 송국리 유적의 담당 부서는 백제 왕도 등 고도(古都) 업무를 함께 맡는 고도보존육성팀이다. 유적 관리는 부여군과의 협력에 기대고 있으나 국가 사적 54만 ㎡의 발굴·보존·정비·활용을 인구 6만의 지방자치단체 부여군의 역량으로 감당하기란 애초에 버거운 일이다.
반면 일본은 요시노가리와 산나이마루야마를 국책 사업으로 복원해 자국 문명의 유구함을 과시하고, 중국은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 선사 유적을 ‘중화 문명 5000년’의 물증으로 내세우는 데 혈안이다. 자국 문화가 얼마나 앞서 있었는지를 증명하려는 총성 없는 경쟁이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동안, 그 경쟁에서 결코 밀리지 않을 물증을 손에 쥔 우리는 그 위에 시멘트를 발라뒀다.
요즘 광화문에서는 현판을 한글로 걸지 한자로 걸지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보존과 복원에 대한 공동체의 논의가 충분하고 큰 그림이 갖춰져 있다면 결코 어려울 일이 아니다. 한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복원이라고 하면 옛 그림에서 근거를 찾아내 고증된 재료로 제작하는 일 등을 떠올리지만, 진정한 의미의 복원이란 우리 공동체의 기억을 다시 만드는 일”이라며 “그것을 어떻게 기억할지 다양한 의견을 모아 논의하는 과정 자체가 가장 중요한 복원이며, 큰 그림을 그리고 단단한 기준을 세운다면 복원의 기준을 정함에 있어 세세한 흔들림에도 강건할 수 있다”고 말했다.
2800년 전 사람들이 나지막한 언덕에 첫 마을을 세웠듯, 이제 우리가 그 언덕을 어떻게 기억할지 큰 그림을 그릴 차례다. 시멘트를 걷어내고 공동체의 기억을 다시 만들 때, 송국리는 K컬처의 가장 오래된 대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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