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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육연원민
작성일 26-09-0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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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과 공기에 가을색이 깃들기 시작하는 이맘때면 생각나는 시가 있다.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오라에 묶여 손목이 사슬에 묶여/ 또 다른 감옥으로 압송되어 가는”으로 시작하는 고 김남주의 ‘이 가을에 나는’이다. 시인을 태운 압송차는 낯익은 거리, 고추를 따는 어머니의 밭, 아이들이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는 방죽가,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강 건너 마을을 지난다. 시인도 그들처럼 놀고, 걷고 싶지만 압송차는 멈춰주지를 않는다.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라는 탄식으로 시는 끝난다.
시인은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으로 구속돼 이듬해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상태였다. ‘창작과 비평’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전남 해남에서 <장길산>을 집필하던 소설가 황석영에게 “나는 구체적으로 싸우고 싶소”라고 말한 뒤 남민전에 합류했다. 시인이기보다 전사(戰士)가 되고자 한 것이다.
그는 1988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될 때까지 감옥에서 250여편의 시를 지었다. 칫솔을 갈아 우유갑과 은박지 등에 꾹꾹 눌러썼다. 그 시들이 1984년 <진혼가>를 시작으로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다> 같은 시집에 묶여 출간됐다. 대개 시대의 모순을 고발하는 날카로운 비수, 전복(顚覆)을 고취하는 뜨거운 격문이었지만, “그리고 가실을 끝낸 들에서/ 사랑만이/ 인간의 사랑만이/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사랑1’ 중) 같은 구절에서 보듯 인간에 대한 사랑에 터 잡은 것들이었다.
신천지예시
그런 .에서 그는 천생 시인이었고, 그의 ‘전사적 실천’이란 온몸으로 쓴 시였다 해도 좋을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2일 김 시인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시인이 유죄를 선고받은 지 46년, 췌장암으로 사망한 지 32년 만이다. 시인은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자유’ 중)라고 했다. 스스로 염결(廉潔)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시적 진술이다. 이런 사람은 존재 자체가 타인을 비추는 거울이다. 시인이 살아 있다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요즘 세태를 어떻게 일갈할지 궁금하다.
정제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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